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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주막보리밥 "털레기 수제비"

집지키는 월천마녀 2025. 11. 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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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주막보리밥 "털레기수제비"

 

가을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어느 오후, 고양 트레이더스에 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주막보리밥집’은 오래된 시골집의 정겨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고소한 보리밥 냄새와 된장의 구수한 향이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바닥에는 따뜻한 온돌이 은근하게 올라오고, 나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부드럽게 테이블 위를 비췄다. 그 순간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을 훑어보다가 ‘털레기 수제비’라는 이름에 눈이 갔다. 이름부터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는 음식이었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털레기’는 예전 농촌에서 밀가루를 물에 대충 털어 넣어 만든 수제비를 말한다고 했다. 투박하지만 정이 묻어나는 이름이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따뜻한 국물이 간절해 망설임 없이 털레기 수제비를 주문했다.

 

잠시 후,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수제비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내 앞에 놓였다. 국물 색은 진한 된장빛이 돌았고, 위에는 호박, 감자, 애호박, 대파, 그리고 들깨가루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수저를 넣자 고소한 향이 한 번 더 퍼져 나왔다. 첫 숟가락을 떠 입에 넣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구수한 맛이 정말 따뜻했다. 짭조름한 된장 국물에 들깨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속이 포근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제비 반죽은 두툼하고 투박했지만, 쫄깃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착 감겼다. 얇지 않고 손으로 직접 뜯어 넣은 듯한 모양새라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옛날식 수제비 생각이 절로 났다. 감자는 포슬포슬했고, 애호박은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들기름 한 방울이 은근히 감돌아 입안에서 고소함이 오래 머물렀다.

 

함께 나온 보리밥 정식도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놋그릇에 보리밥이 담겨 있고, 그 옆에는 시골 장터에서나 볼 법한 나물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도라지나물, 그리고 직접 담근 듯한 김치 한 접시까지. 고추장 한 숟가락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두른 뒤 비벼 먹으니,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수제비와 찰떡궁합이었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과 비빔밥 한 입이 번갈아 들어가면서, 몸도 마음도 노곤하게 풀렸다.

 

식사 중간중간 창밖을 바라보니 서오릉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결에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을 보며 따뜻한 수제비를 먹고 있으니, 마치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옆자리에서는 등산을 마친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그 소리마저도 정겹게 들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사장님이 문 앞까지 배웅을 해주시며 “이제 날이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한마디에, 음식의 따뜻함보다 더 큰 온기가 전해졌다. 문밖으로 나서니 찬바람이 볼을 스쳤지만, 속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손맛이 느껴지는 털레기 수제비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녹이는 ‘추억의 맛’이었다. 서오릉의 가을과 주막보리밥집의 구수한 향이 어우러진 오늘의 오후 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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