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줄거리 요약
1933년,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항일 조직 '흑색단'의 스파이를 ‘유령’이라 부르며 일본 통치에 첩보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선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분),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분),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박소담 분),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 분), 통신과 직원 백호(김동희 분)까지 총 5명이 외딴 호텔로 ‘유령’ 용의자로 끌려갑니다. 이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누구를 고발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놓입니다.
총독부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 분)는 총독 암살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는 ‘유령’을 찾기 위해 이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한정된 시간 동안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스릴 넘치는 심리 게임이 펼쳐집니다.
초반부에는 용의자들 사이의 추리가 중심이 되다가, 중반부부터는 액션으로 전환되며 긴장감은 한층 고조됩니다. 특히 박차경(이하늬 분)은 뛰어난 여성 액션을 보여주며 극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2. 출연진의 연기 평가
- 설경구 (쥰지 역)
줄곧 냉정하고 계산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무라야마 쥰지의 복잡한 내면을 굵직한 연기로 그려냅니다. 특히 군인 출신에 조선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의 캐릭터는 설경구의 연기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연기 인생의 매너리즘을 깨기 위한 열망을 표현하듯, 이 작품에서 집중력 있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 이하늬 (차경 역)
암호 기록 담당이라는 차분한 외면과는 대조적으로, 실제로는 강력한 액션과 내면의 열망을 폭발시키는 인물로 연기합니다. 특히 중반부 육탄 액션 신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현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강렬함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 박소담 (유리코 역)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비서로, 겉모습은 세련되고 차분하지만 내면에 단단한 신념과 반항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카이토에 맞서며 대등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연기합니다. - 서현우 (천계장 역)
통신과 암호 해독 담당으로, 소소한 감초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단순한 조연을 넘어 이야기의 중간중간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로 기능합니다. - 박해수 (카이토 역) 원래 일본인 역할로 기획되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배우인 박해수가 급하게 투입되어 일본어까지 연습해 완벽하게 소 화했습니다. 첫 촬영부터 제작진의 박수를 받을 정도로 프로다운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 등장인물 간의 갈등
- 적과의 경계와 내부의 의심
가장 핵심적인 갈등은 '유령'이라 불리는 스파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인물이 의심 대상이 되며, 극도의 불신 속에서 서로를 막고, 때로는 밀고하며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 신념 대 생존
각 인물은 신념(항일, 조직, 정체성)과 생존(살아 돌아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박차경은 가족의 배경을 버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나머지는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 정치적 배경과 개인적 야망
무라야마 쥰지는 총독부 복귀라는 개인적 목표가 있어 카이토와의 경쟁 구도를 형성합니다. 유리코 역시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려는 야망과 자존감을 드러냅니다. - 밀실 심리전 외딴 호텔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밀도 높은 심리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쉴 새 없이 말과 감정이 충돌하고, 신뢰와 배신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집니다.
4. 총평
《유령》은 추리와 액션, 심리 스릴러가 적절히 혼합된 장르적 실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초반부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추리극의 긴장감이 펼쳐지고, 중반부 이후에는 배우들의 강렬한 육탄 액션과 색감 있는 미장센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하늬의 액션 신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기존 여성 캐릭터 연기에서 벗어나, 강인하고도 정교한 액션을 통해 영화의 중심을 이끕니다.
설경구는 절제된 연기 속에서도 인물의 갈등과 야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무게감 있는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박해수 역시 갑작스러운 캐스팅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몰입도와 전문성을 보여주어 인상 깊습니다.
다만 초반부 일부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행동 동기나 대사 전개에서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몇몇 인물이 예고 없이 퇴장하거나 설명 없이 사라지는 설정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항일 투쟁, 신념, 연대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며, 역사적 감수성과 장르적 재미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독립투사들의 정신과 위험한 미션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