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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준」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내이허(內醫許)!” 하고 외치던 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방영됐던 MBC 대하드라마인데, 조선 시대의 명의이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당시로서는 의학 드라마가 그렇게 길고 진득하게 방영된다는 게 흔치 않았는데, 이 드라마가 그 전형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본방사수를 했었는데, 일요일 저녁마다 허준이 어떻게 의술을 펼치고 또 어떤 고난을 겪는지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습니다.
1. 줄거리
줄거리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허준의 성장기
드라마는 허준이 어린 시절 신분적 한계에 묶여 있는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허준은 양반이긴 했지만 어머니가 천민 출신이어서 관직에 진출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이 아주 크게 부각됩니다. 허준은 분명히 총명하고 재능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출신 때문에 차별받고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 자라다 어느 날 운명처럼 명의 유의태를 만나면서 그의 제자가 되고, 본격적으로 의술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2) 스승과 제자, 그리고 고난
허준의 삶을 바꾼 건 바로 스승 유의태였습니다. 유의태는 뛰어난 의원이자 의술에 대한 철학을 지닌 인물이었는데, 사람을 신분이 아니라 오로지 환자로서 바라보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허준은 유의태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으면서, 의술이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행위라는 걸 깨달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많은 시련이 따라, 병자들을 치료하다가 실수로 환자가 죽기도 하고, 또 권력 다툼에 휘말려 억울하게 몰리기도 하지만 그런 고비마다 허준은 좌절하기보다 의학을 더 깊게 파고들어 결국 인정받게 됩니다.
(3) 내의원과 동의보감
허준이 드디어 조정의 내의원에 들어가 왕실과 양반들을 치료하게 되면서 의사로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광해군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드라마에서는 허준이 광해군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권력 다툼 속에서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허준의 의술이 단순히 출세나 돈벌이를 위한 게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동의보감 집필 과정 입니다. 끝없는 자료 수집과 연구, 수많은 반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끝내 동의보감을 완성하는데, 이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출세기가 아니라, 조선 의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2. 시대적 배경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시기입니다. 사실 조선 중기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로 임진왜란이 터졌고, 정치적으로는 사림파의 분열과 붕당정치가 본격화되던 시기라 나라가 굉장히 어수선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특히 임진왜란 때 백성들이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단순히 시대극의 장치가 아니라 허준이 왜 의술에 헌신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양반 사회가 백성을 돌보지 못하던 시절, 허준 같은 의사가 등장해 평민들에게도 의술을 베푼 건 당시 사람들에게 큰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배경은 신분제 사회의 차별입니다. 허준이 어머니가 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평생 한계를 느꼈다는 건 역사적으로도 사실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신분제의 벽이 주인공을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동시에 그가 더 큰 의지가 되어 의술에 매달리게 만든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즉, 개인사와 시대사가 맞물려서 이야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였던 겁니다.
3. 흥행 요소
「허준」이 당시에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냥 의학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드라마적 재미와 감동, 사회적 메시지가 다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 배우들의 명연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연 배우들의 힘 입니다. 허준 역의 전광렬은 진짜 그 배역과 혼연일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전광렬 하면 허준’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대표작이 됐습니다. 그리고 스승 유의태 역의 이순재, 왕 광해군 역의 김병세, 또 허준의 아내 역의 황수정 등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확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전광렬이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눈물 흘리던 장면, 혹은 동의보감을 완성하고 나서 감격해 하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소름 돋을 정도입니다.
(2) 따뜻한 메시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의학적 사건만 다룬 게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중심에 두었다는 게 흥행 비결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은 허준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 보면서,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을 느꼈습니다. 당시 IMF 외환위기 이후라 사회가 전반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희망’과 ‘헌신’이라는 메시지는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3) 역사와 의학의 결합
보통 사극이라고 하면 권력 다툼이나 전쟁, 로맨스를 주로 다루는데, 「허준」은 거기에 의학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접목시켜 당시로서는 참 파격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는 실제 한방 치료법이나 약재, 침술 같은 걸 많이 보여줬는데, 이게 대중들에게도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방송이 끝난 후에 한약방이나 침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하니까,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꽤 컸던것 같습니다.
(4) 시청률 신기록
흥행 성적도 어마어마해서 평균 시청률이 50%에 육박했고, 최고 시청률은 63%를 넘겼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기록으로 전국민이 일요일 저녁마다 허준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서 드라마를 보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
4. 나에게 남은 인상
저는 「허준」을 보면서 단순히 옛날 사람 이야기라는 느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통하는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신분이나 배경을 탓하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결국 한 권의 책으로 나라와 백성을 구한다는 건 지금도 울림이 큽니다. 또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 드라마였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기술을 잘 쓰는 게 아니라,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게 진짜 의사라는 걸 허준의 삶을 통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드라마 「허준」은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와 성장, 조선 중기의 혼란한 시대상, 그리고 동의보감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입니다.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국민드라마 반열에 올랐고, 지금 다시 봐도 감동과 여운이 남는 걸작입니다.
아마 40~50대에게 「허준」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한 시절을 함께한 추억일 것입니다. “내이허!”라는 대사가 주던 울림처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되새겨주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