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넷플릭스 시리즈 <유재석 캠프> 총 10부작의 대장정을 드디어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 회 퇴소식 크레딧이 올라가고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참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먹먹한 감정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예능을 봐도 그저 헛웃음 한 번 짓고 넘기기 일쑤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묘하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더군요. 정주행을 끝내고 나니 마치 내가 2박 3일간 그 시골 캠프장에 직접 참여했다가 일상으로 뚝 떨어진 것 같은 지독한 아쉬움과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 대체 왜 이 예능은 마흔이 넘은 내 마음에 이토록 깊은 발자국을 남긴 걸까요?

     

     

     

     

     

     

    1. 수식어를 떼어낸 인간 대 인간의 만남,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해방감'

    이 캠프의 가장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규칙은 처음에 서로의 배경을 전혀 묻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이, 출신, 직업, 직위 같은 것들을 일절 배제한 채, 그저 "떠들어 재끼고, 놀아 재끼고, 까불어 재끼자"는 캠프의 구호에 몸을 맡깁니다.

    40대 이상이 되면 공감하시겠지만,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온갖 명함과 수식어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어디 사세요?", "어떤 일 하세요?", "몇 년생이세요?"라는 질문들은 어느새 상대를 탐색하고, 나와 견주며, 편견의 틀을 짜기 위한 필수가 되어버렸지요.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가정에서는 부모나 배우자라는 역할로 나 자신을 꽁꽁 숨긴 채 '가면'을 쓰고 버텨내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데 화면 속 참여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른 채 아이처럼 낄낄대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아무 조건 없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소통해 본 게 언제였던가.'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처럼, 이들은 일상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이 인터뷰에서 "배경을 밝히지 않으니 편견 없이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할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비교하고 서열을 매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이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나 아름답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습니다.

    2. '말 안 듣는 자식과 초보 사장' 같았던, 묘하게 정감 가는 출연진의 케미

    캠프를 이끄는 4인방(유재석, 이광수, 변우석, 지예은)의 조합은 처음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이 생소한 조합이 10부작을 꽉 채울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들이 보여주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기는 마치 우리네 평범한 일터나 가정의 모습을 보는 듯해 깊은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유재석은 중심을 잡는 든든한 캠프장이고, 이광수, 변우석, 지예은은 그야말로 대책 없는 초짜 직원들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유사 경험(대환장 기안장)이 있는 지예은이 큰소리를 뻥뻥 치지만 실상은 허당미가 넘치고, 이광수와 변우석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제 몫을 해내려 땀을 뻘뻘 흘립니다.

    이들이 뚝딱거리며 캠프를 운영하고 참여자들에게 어떻게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유대감이 생겼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빈틈을 메워가며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과정. 그것은 거창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직장과 사회에서 겪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닮아 있었기에 더 정이 갔던 것 같습니다.

    3. 다큐멘터리처럼 정직한 '시간순 편집'이 준 동기화의 힘

    요즘 예능들은 자극적인 장면을 앞으로 당겨 쓰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교차 편집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재석 캠프>는 참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길을 택했더군요. 재미를 위해 시간 순서를 억지로 바꾸거나 컷 편집으로 억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최소화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밥을 짓고, 낮에 땀 흘려 놀고, 저녁에 모닥불 앞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전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묵묵히 흘러갑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 뚝심 있는 연출 덕분에, 저는 완전히 화면 속 공간으로 동기화될 수 있었습니다.

    시청자로서 한 발짝 떨어져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출연진들과 함께 숨 쉬며 2박 3일의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낸 느낌이었습니다. 10부작이라는 긴 호흡 동안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건, 억지 짜깁기가 아닌 '진짜 시간의 힘'이 주는 묵직한 몰입감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4. 유재석이라는 한 인간의 내공, 그리고 포용적 리더십

    국민 MC 유재석. 우리는 그의 얼굴을 TV나 모니터로만 보아왔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예능을 보고 자랐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정상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뼈저리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 위치에 올랐으면 이제는 대접받으며 적당히 진행할 만도 한데, 유재석에게 '적당히'라는 단어는 없어 보였습니다. 온몸을 던져 눈높이를 맞추고, 생판 처음 보는 일반인 참여자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지독한 워커홀릭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몰입이 오롯이 '타인의 행복과 편안함'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워커홀릭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직원들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참여자 한 명 한 명이 소외되지 않도록 판을 깔아주는 모습은 진정한 포용적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의 표본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위치가 되다 보니, 그의 리더십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철학과 묵묵히 쌓아온 인간적 내공이 발현된 결과일 것입니다. 나도 저런 멋진 어른, 닮고 싶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자문해 보게 됩니다.

    5. "전쟁터 같은 삶에서, 승리보다 스스로를 지켜내기를..."

    캠프의 후반부, 마침내 서로의 직업과 나이, 그리고 삶의 아픔들이 하나둘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캠프의 공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고, 타인이 고백하는 삶의 무게와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가만히 보듬어주는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퇴소식, 유재석 캠프장이 건넨 작별 인사는 오랫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는 명대사였습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고 때로는 인생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승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이 치열함 속에서 지켜 내시길 바랍니다."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 전쟁에 뛰어들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불안해하던 제 가슴에 꽂히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이기라고, 성공하라고, 남들보다 앞서가라고 채찍질합니다. 하지만 이 캠프는 우리에게 "이겨야만 가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다치지 말고 무사히 살아남아 너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고 말해줍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또다시 지독하고 삭막한 현실로 돌아가 치열하게 부딪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너무 무겁고 힘들 때, 내 삶을 지탱해 줄 작은 위로의 기억 하나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마치 비밀 보관함에 넣어둔 따뜻한 난로처럼 말이죠.

    멋진 기획으로 중년의 시청자에게까지 뜨거운 눈물과 위로를 선물해 준 <유재석 캠프>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긴 후기를 마칩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 부디 다치지 말고 스스로를 잘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반응형